드론을 통해 오프라인 디지털화에 일보 다가가는 방법
그간 건설현장은 IT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공정과 관련된 서류는 종이문서로 기록됐다. 시각 자료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 현장에서 그린 도면 몇 장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했다. 물론 건설현장 사람들은 그런 현장 자료만 보더라도 커뮤니케이션에 큰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건설현장을 벗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다.
이런 건설현장을 ‘드론’을 통해 디지털화할 수 있다. 건설용 드론 데이터 분석 플랫폼 업체 카르타(CARTA)가 전해준 그 방법은 이렇다. 먼저 자율주행 드론이 건설현장을 날아다니며 수백~1000장의 사진을 촬영한다. 별도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촬영된 건설현장 사진들을 분석하여 3D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이 3D 이미지에는 현실세계의 ‘길이’, ‘부피’ 척도가 그대로 반영된다.
카르타 플랫폼 데모 구동화면. 측량을 원하는 건설현장의 범위를 지정하면 플랫폼이 해당 지역의 길이, 부피를 자동 계산해 산출해준다.
이 정보를 통해 기존 사람이 일일이 하던 ‘측량 작업’의 일정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 흙을 몇 톤 팠는지, 몇 톤 덮었는지, 시간이 지나가며 변해가는 건설현장의 모습을 ‘시각화’하며 언제어디서든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열람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고, 논의할 수 있다. 건설사가 사용하고 있는 캐드(CAD)와 같은 상용 설계 프로그램과 연동한 추가분석도 가능하다. 측량 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다. 하청업체, 시행사, 발주처가 서로의 측량 데이터를 믿지 못해서 2중, 3중으로 측량하던 프로세스를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카르타의 설명이다. 카르타에 따르면 건설현장의 면적과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론이 건설현장 토공량 산출 비용의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드론 잡는 드론의 변신
카르타가 처음부터 건설현장용 드론을 만들지는 않았다. 카르타의 전신인 스내쳐에이아이(2017년 12월 창업)는 ‘안티드론’을 만들던 업체다. 안티드론이란 쉽게 말해, 공역에 떠오른 비인가 드론을 포획하는 드론이다. 서울 상공에도 가끔 떠오르는 북한 무인기 침투를 막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보면 격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재물손괴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드론이 손상되지 않게 안전히 포획하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스내쳐에이아이는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 안티드론을 공급했다. 그물포를 달고 비행하는 스내쳐에이아이의 드론은 그물포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움직이는 드론을 자동 조준한다. 타깃이 록온(Lock-On)되면 드론 조종사가 그물포 발사 버튼을 누른다. 다행히 평창올림픽에 인가되지 않은 무인기가 침투하지는 않아서 안티드론이 활약할 일은 없었지만, ‘레퍼런스’는 남았다.
카르타가 2018년 평창올림픽에 배치한 안티드론의 모습. 이 드론은 카르타가 직접 3D프린터로 모델을 떠서 하드웨어를 설계했고, 내장된 소프트웨어도 자체 개발했다. 카르타가 개발한 드론의 평창올림픽 배치는 돈은 별로 안 됐지만, 아무래도 신규사업 영업에 있어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카르타는 평창올림픽 프로젝트가 끝난 3월 사업 아이템을 전환(Pivot)했다. 드론조차 활성화되지 않는 한국시장에서 ‘드론 잡는 드론’은 너무 시기상조였다는 판단에서다. 안티드론 아이템으로는 정부주최 행사에 제품을 공급하는 B2G 사업 외에는 딱히 답이 없었다. 애초에 드론 잡는 드론은 ‘평창올림픽’이라는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프로젝트로 바뀌었다는 게 카르타측 설명이다.
카르타가 그렇게 눈을 돌린 시장은 ‘건설현장’에 있었다. 최석원 카르타 대표는 “산업과 IT기술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그것을 채웠을 때 ‘파급력’이라는 것이 생긴다”며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건설은 기간산업이면서 거대한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는데 IT적합도는 낮았다. 거기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카르타의 기술은 오프라인 건설현장 자체를 컴퓨터로 당겨오는 것”이라며 “단순히 드론을 써서 측량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라 볼 수 있다. 향후 카르타가 확보할 건설현장 데이터가 무인장비나 공정이 도입되는 스마트건설 시뮬레이션을 위한 기반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핵심은 소프트웨어
카르타가 내세우는 핵심 역량은 2D 사진들을 3D로 맵핑(Mapping)하는 소프트웨어다. 1차적으로 드론에 있는 GPS를 활용하여 미터(m)와 제곱미터 단위의 척도를 산출할 수 있다. 물론 GPS에 오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2차적으로는 지상 기준점을 몇 개 찍어 실제 측량을 해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반영을 해 정확도를 보정한다. 근래에는 드론에 내장된 GPS 기능이 상당히 좋아지고 있어서, 지상 기준점이 없어도 꽤 괜찮은 성능이 나온다고 카르타는 보고 있다.
카르타 플랫폼 데모구동 화면. 드론으로 촬영한 2D 사진을 3D로 맵핑하는 것이 카르타의 핵심 기술이다.
여기까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드론은 거들 뿐이다. 카르타가 촬영용으로 사용하는 드론을 자체 개발하진 않는다. DJI와 같은 외부 드론업체의 하드웨어를 사용한다. DJI의 경우 드론 자율주행 기능을 API 형태로 공개했으며, 해당 API를 활용하여 드론을 3D 측량에 최적화해주는 3P앱이 시중에 나와 있다. 카르타는 건설현장 직원을 대상으로 드론 비행 방법을 2~3일 교육할 뿐이다.
최 대표는 “우스갯소리로 행글라이더를 탄 사람이 DSLR로 건설현장 사진을 수십장 촬영해오더라도 우리 플랫폼을 통해 분석해줄 수 있다”며 “카르타는 건설업체에게 어떤 드론을 쓰면 좋은지 추천을 해주는 정도로 개입한다. 큰 건설현장에서는 이미 드론을 통해 측량작업을 하는 곳이 많아서, 그냥 원래 쓰던 드론을 쓰면 된다. 드론은 이미지 촬영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카르타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라 설명했다.
B2B 현장 박치기는 ‘진행형’
카르타는 지난해 말부터 몇몇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플랫폼 공급 영업을 하고 있다. 건설현장 하나당 월 구독료를 받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잡아가고 있다는 게 카르타측 설명이다. 최 대표는 “드론을 통해 측량 데이터를 모으는 팀은 꽤 있지만, 이런 업체들은 대부분 해외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며 “카르타처럼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카르타의 영업 방식은 일단 부딪치는 것이다. 건설사를 만나고, 현장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실제 드론운영을 시범운영하면서 말이다. 최 대표는 “사실 현장을 방문하기 전에는 건설현장에 드론 활용을 도입하도록 설득하는 게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건설회사라면 IT 도입에 대한 관심도 없고, 기술을 설명해도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예상보다 드론 활용을 고민하는 건설사가 많았다. 특히 탑티어에 있는 건설사들은 본사에 드론운영 관련 TF를 만들거나 리서치를 하는 조직을 이미 두고 있었다. 이런 조직은 3~4년 전부터 드론 활용을 고민했고, 실제 테스트도 많이 해봤더라”라고 설명했다.
물론 ‘현장’을 설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최 대표는 “본사의 윗선에서 건설현장의 드론 활용을 고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장단계까지 드론을 도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여전히 도전적인 이슈”라며 “현장에서는 솔직한 말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들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을 잘 설득하는 것이 우리 팀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 말했다. 카르타가 현장영업이 아닌 ‘본사 영업’을 통해 수많은 현장에 플랫폼을 전파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다.
한편, 카르타는 지난달 영국계 엑셀러레이터 킹슬리벤처스로부터 2억원의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다가오는 5월까지 드론을 활용한 건설현장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완성하고 대형 건설사와 POC(개념증명, Proof of Concept)에 들어갈 계획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