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평창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1218대의 드론 군집이 만드는 웅장한 오륜기 퍼포먼스였다. 5년 전이었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와 배터리, 모터 제어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실제 밤하늘을 드론으로 만든 오륜기로 수놓을 수 있게 됐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 오륜기 드론쇼
취미용 드론이 대중화된 뒤로, 관광지에서 드론이 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어려운 조작 없이 간단하게 여행지의 멋진 항공 촬영 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 끌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계올림픽이 개최돼 수만명의 외국인 여행객이 몰리고 있는 평창에서는 관광객들이 날리는 드론을 볼 수가 없다. 여행객이 몰리는 장소치고 드론이 날지 않는 곳이 없는데, 평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제 관광지치고 드론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개막식날 밤의 평창 올림픽 플라자
드론의 위험과 그 대비책
드론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취미로 드론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불안해지는 곳도 있다. 공항, 부대, 발전소 등의 주요 시설들이 바로 그 대상이다. 드론을 이용한 테러나 무단 정보 수집이 너무나도 쉽지만, 이를 막을만한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 보아도, 시중에서 3-4만원에 판매되는 시마의 드론에 위험물을 매달아 날린다면 어떨까. 좀 더 나가서 60만원대에 판매되는 DJI의 드론을 이용하면 이러한 시설의 고해상도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의 핵심적인 문제는, 이런 위험한 행동들에 전문지식이 거의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저렴한 드론은 누구나 구할 수 있다.
드론을 이용한 목적 없는 위험 활동은 너무나도 쉬운 반면,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은 거의 없다. 드론을 막는 방법은 크게 물리적인 방법과 전자적인 방법이 있다. 물리적인 방법은 말 그대로 총알이나 그물을 발사해 드론을 격추시키는 것이고, 전자적인 방법은 방해전파를 이용해 드론을 조종하는 전파나 GPS 신호를 교란시켜 드론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 지대에서는 마약을 운반하는 드론을 격추하기 위해 소총과 전자파 교란장치가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물은 사거리가 매우 짧고, 50m 이상의 고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드론을 총으로 격추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전파 교란을 통해 통제불능이 된 드론은 또 그것 나름대로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러한 방법들조차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나마 군대나 경찰 시설에서는 총기와 전파교란 장치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발전소나 민간 시설에서는 사실상 드론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파 교란장치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위험한 상황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군, 경찰 관계자가 상주하고 있지만, 비인가 드론을 향해 섣불리 총이나 방해전파를 발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림픽 경기장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격추된 드론이 추락하며 관중이나 선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론이 나타나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눈에는 눈, 드론에는 드론!
이번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내놓은 답은 지극히도 ‘메이커’스러운데, 바로 ‘드론 잡는 드론’ 작전이다. 드론을 잡아챌 수 있는 드론을 날려서 인가 받지 않은 드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내가 평창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드론 잡는 드론’의 운용이다.
드론을 이용해서 비인가 드론을 잡아채 버리면 앞에 나온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드론이 높게 떠 있어 발생하는 사거리 문제는 포획용 드론을 똑같이 높게 띄우면 해결될 일이고, 총기나 전파교란 장치 등 법에 저촉되는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포획용 드론이 직접 비행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의 비인가 드론을 포획할 수 있기 때문에 드론 한 대로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 될 수 있겠다.
'드론 잡는 드론’의 비행
비인가 드론을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게 무력화하기 위해 포획용 드론은 그물 발사장치를 사용한다. 그물 발사장치는 접혀있는 그물을 CO2 카트리지에 들어있는 고압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압력으로 발사한다. 발사된 그물은 10m가량을 빠르게 날아가 날렵하게 비행하는 소형 레이싱 드론까지도 포획할 수 있다. 단, 그물 발사장치는 한 번만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인가 드론을 놓칠 경우를 대비해서 아래쪽에는 커다란 그물도 장착돼 있다. 그물 발사장치처럼 신속하고 멀리까지 포획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비인가 드론을 포획할 수 있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그물을 매달고 비행하는 드론
조준을 위해서 그물 발사장치는 짐벌이라는 장치로 동체에 연결돼 있는데, 이 장치는 동체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그물 발사장치만으로는 조준하기 어렵고 동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바람이 바뀌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쓰는 장치이다.
보통 항공 촬영에 부드러운 움직임을 위해 쓰는 짐벌은 구동에 BLDC 모터를 사용한 3축 짐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포획용 드론의 그물 발사장치는 2축 서보모터 짐벌에 장착된다. 서보모터는 같은 무게의 BLDC 모터에 비해 강력한 힘(토크)을 내고, 조준선을 중심으로 회전해도 조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물 발사 시 반동을 견뎌내기 위한 견고한 구조 역시 이 짐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짐벌의 모습
이 짐벌이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짐벌에 그물 발사장치가 장착돼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움직이는 드론 위에서 움직이는 비인가 드론을 조준하는 게 쉽기만 할까. 컬링 국가대표팀 할아버지가 와도 처리하기 힘들 걸로 생각한다. 난이도로 따지면, 움직이는 로데오 머신 위에 앉아서 총으로 날아가는 새를 맞추는 정도이다. 말 위에서 활을 쏘던 옛날 무사가 살아 돌아오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2018년이니 평창올림픽 드론 방어팀은 기술로 해결했다. 바로 인공지능! 짐벌에는 그물 발사장치와 같은 방향으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지상국에서 카메라 영상을 보고 비인가 드론을 지정하면 드론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지정된 드론을 추적하며, 짐벌을 움직여 그물 발사장치의 조준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면 지상국의 파일럿은 조준 상태를 확인한 뒤 발사 버튼만 누르면 비인가 드론을 포획할 수 있다. 21세기다운 해결책이지 않은가.
전용 짐벌에 장착된 그물 발사장치
드론의 비행을 제어하는 컨트롤러와 영상 분석을 위한 컴퓨팅 모듈
‘드론 잡는 드론’은 지난 6월 평창 대테러 안전모의 훈련을 거쳤고 올림픽이 치뤄지고 있는 지금 평창올림픽 경기장에 배치돼 있다. 빙상경기를 진행하는 강릉의 시설은 모두 실내 경기장이므로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평창올림픽 플라자와 설상경기가 진행되는 알펜시아 올림픽 파크에 포획용 드론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다.
정비 중인 드론
드론 방어의 미래
평창올림픽 경기장에서 운용되고 있는 ‘드론 잡는 드론’에도 명확한 한계점은 존재한다. 드론 비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에 시간이 걸리고, 야간에는 드론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수 없어 비행이 불가능하다. 요즘과 같이 추운 날씨에는 배터리 성능이 떨어져 포획용 드론 비행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고, 비인가 드론을 잡기 위한 포획용 드론의 비행을 허가받아야 한다는 행정적인 절차 역시 드론 잡는 드론을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식으로 직접 드론을 포획하는 방법 외에도 드론 비행이 금지된 구역에서의 드론 비행을 막는 데는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널리 사용되는 DJI의 지오펜싱 기능은 드론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GPS를 이용해 드론 비행 금지 구역에서는 드론이 이륙하지 못하도록 해 드론의 비행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현재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 지역 역시 지오펜싱 구역으로 설정돼 DJI의 드론은 비행할 수 없다.
드론은 전에 없던 아주 유용한 도구지만, 그만큼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위험을 이유로 들어서 드론의 이점을 무시하고 무작정 금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막는다는 이유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드론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통제와 자유 사이에서 법이 탄생했듯, 그 과정에서 드론을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이 밝혀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와 기술이 성숙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